어떤 계기로 인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어. 마음이 뜨거워져서 뭐든 가능할 것 같은 그 느낌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신뢰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혹은 생각속에서 지나치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때에 우리를 찾아오기도 하지. 그것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삶의 큰 변화를 결심하기도 해.
믿음을 갖게 되는 계기나 동기들이 그렇게 찾아오기도 해. 신비할 만큼 견딜 수 없는 감격 같은 것이 있을 때가 있어. 많이 지치고 절망한 사람일수록 감격은 더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
재미있는 것은 사람은 무엇인가에 감동을 받으면 어떤 모양이든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아. 우리는 본성상 행동하지 않으면 그것이 진실인 것을 보일 방법이 없다고 믿는 모양이야. 무엇이나 소중한 것들은 더 많은 세월과 마음의 투자가 필요한 것 같데도 말이야.
왜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는 다른 것들과 달리 생각하는 것일까? 어차피 이 세상은 질서와 균형의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데 말이야. 왜 우리는 난데 없는 특별한 사건이나 이적과 같은 것을 어떤 표적으로 이용하는 것일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들의 전 인생을 통해서 조금씩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쟎아.
여전히 우리가 물어야 할 가장 큰 질문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하는 거야. 아무리 큰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것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가꾸어 갈 방법은 없는 것 같아. 오히려 그 경험이 특별할수록 오히려 왜곡되기 쉬운 것 같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면서도 자랑하는 것은 자신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겠지? 선하다고 믿는 어떤 일들도 어느 순간에 어떤 이유로 회피하기 시작하고, 악하다고 믿는 어떤 일들을 그럴 법한 이유를 들면서 행하게 되었을 때,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이 사람의 존재를 보게 하는거지. 구원에 대해서 더 이해가 생기는 거야. 섬짓하지만 우리 누구나 거쳐가야하는 경험들인 것 같아. 자주 반복해서 습관이 되어 있는 일은 그 습관이 갖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서 무감각해져가는 것도 기억해야 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들여다 보았을 때 왜 섬짓했는지 마저도 잊어버리게 되거든.
하나님 안에서 갖는 경험들은 신비할 때가 있어. 어떤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내 안에 일어나는 변화들 말야. 그렇게 조용하고 침착하던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걸 보면 그렇지. 그 이는 그 느낌들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모르는 거야. 소리지르는 반응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감격의 크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거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 사람을 그렇게 소리지르게 한 감격의 흔적이 없는데도, 언젠가 길거리로 돌아가서 소리 질러야 한다는 생각만 남을 때가 많아. 믿음은 자라야 하는 것이거든. 내가 그 시간를 지나갈 때에, 단지 거기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괴롭혔던 노천극장의 동지 학생들과,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복음으로 괴롭혔던 버스, 기차의 그 어르신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 있어. 복음을 전한다는 의도가 그 방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거든.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래도 그리스도가 전해지니 좋은 거 아닌가.”라고 말한 것은 아주 자조적인 표현이었던 거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삶의 모든 것에 대한 것이라서 내 삶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씩 어울리는 것으로 변해가는 거야. 열정 때문에 사람이 성숙하는 것은 아니거든. Passion of the Christ, 예수님의 열심은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것들을 목소리로 혹은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 자신이 누군지를 밝혀야 할 때마다 오히려 침묵하셨거든, 그의 열심은 모욕스러움과 수치스러음과 극한에 달하는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사람을 사랑하셨으므로 견디시는 거였거든. 그의 열심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어.
사람은 복음을 듣고 나서 구원하심에 대해 알게 되지만, 만약에 우리가 복음을 다른 모양으로 배웠다면 우리시대 교회는 많이 달라졌을까? 내용없는 열정이 인정을 받고, 믿음이란 어떤 공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 되는 우리 말야. 우리가 알고 전하는 복음은 이제 돌아보아야할 시대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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