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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

사람 그리고 하나님

by jeffreyM 2024. 11. 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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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게 될 때에, 처음 그 동기나 시점이 어떠했든지 간에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이 하신 일의 거대함에 압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만드신 일도, 사람을 사랑하시는 이야기도, 사람이 가진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실상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평생은 하나님을 구하고 알아가는 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항상 사람입니다. 사람은 귀한 일들도 사소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악한 의도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예외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여전히 사람됨의 굴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가 자유함이란 지식이나 깨달음이나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어떤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함을 고백하는 것을 읽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아주 자주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고집스러움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은혜라는 이름으로 불가한 일들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라는 표현도 그것이 삶 자체의 의미가 아니면 사람은 자신의 무지함을 보여주는 소리가 될 뿐입니다. 대개 믿음은 도구도 어떤 행위의 동기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일에 사용될 때에 그 믿음이란 사람이 어디까지 악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몇십년 교회를 다녔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몇년 신학교를 다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목사도 집사도 그것을 역할 이상의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 
구약을 읽을 때에 어떤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의외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을 공부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그 비어있는 부분들을 수 많은 추측과 상상으로 그 인물의 어떠함을 그려 나가기가 쉽습니다. 성경의 기록들은 사람에 초점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혹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인도해 가시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도 행위나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 같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 존재의 귀함을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다른 더 귀한 가치들이 포기된다면, 믿음의 의미와 관계 없이 “믿음 좋은 사람”으로 불리우는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하고 모순 투성이인 사람이 사랑 많은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에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상처와 그래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그 자리에서, 크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 그를 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긍휼함과 위로를 나누는 것이 우리 교회이어야 하고 믿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시대에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교회”라는 의미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것의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선 사람의 마땅한 자리인 것입니다. 목적이 있는 내려놓음이 아니라서 자랑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거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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