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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친구에게

사람 그리고 하나님

by jeffreyM 2024. 11. 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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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쩌면 삶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 절망이란 현재 있는 자리에서 다른 긍정적인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거든. 너무 깊은 절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지만, 자신의 감각을 한발짝 뒤에서 볼 수 있다면 괜찮은 것 같아.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인생은 더 견딜만 할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찾아오는 위기는 어떤 사람인가와 관계없이 치명적일 수 있는 것 같아. 어려서부터 다른 문화나, 멀리 있는 세상을 경험할 기회가 생기면, 사람이 살면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같아. 여행이 주는 것들이기도 하구. 거기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여행 말야.
그래서 그 많은 다양함 가운데서 사람 안에 심겨져 있는 영원함에 대한 간구들은 신기하게 느껴지는 거지. 어디서 왔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문제는 사람들 안에서 내게 주어지는 평가가 주는 유혹같은 거야. 홀로 있을 때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가장 진실에 가까울 텐데, 사람은 살아가는 이유나 즐거움들을  자주 그 평가에서 찾아. 그래서 모든 노력을 들여서 자신을 높이고 싶어하고, 모든 힘을 들여서 부정적인 평가들을 감추고 싶어하지.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자신이 가진 온전함에 대한 감각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음을 놓친다는 거야. 사람이 설령 어떤 대상을 비판하거나 사리를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상에 대한 감각의 문제야. 무엇이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이야기하는 사람의 어떠함을 말하는 것은 아닌거지. 어떤 것에 대해 소유하고 있는 감각은, 선택과 회복을 위한 출발점 같은 역할만 할 뿐이야. 사람은 얼마든지 마땅한 것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피해야 할 것을 향해 갈 수 있는 존재이거든.
우리 질문은 사람이 그 감각이 여전히 있는 동안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는 거야. 사람의 부조리함은 근거는 알 수 없으면서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좋은 것들에 대한 회피 같은 것이기도 해. 마땅히 추구해야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을 사람은 피하거든. 효율성의 핑계일 때도 있고, 유익함의 문제나 우선순위의 선택일 수도 있어. 
예수 그리스도, 그 회복의 약속은 그 관계, 사람됨의 회복에 대한 것이지. 생명나무, 사람은 범죄하기 전에 유혹을 받았어. 사람의 회복이란 하나님의 처음부터 원하시는 것들을 볼 수 있고, 선택하거나 혹은 또 어떤 것들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그 관계의 온전함에 대한 거야. 사람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온다면 사람의 감각은 온전한 기쁨이나 즐거움을 볼 수 있게 되고 구하게 된다고 믿어.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복음의 약속이고, 사람이 왜곡하지 않는 한,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더 분명하게 보여지게 되어 있어. 우리가 수시로 물어야 하는 질문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거야. 너무 많이 절망하지 않았다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길을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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