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안에서 성스럽다 거룩하다는 표현은 단어나 문장 혹은 그 사건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냐.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고,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 단어들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성스럽다 거룩하다는 판단이 되지는 않아.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신앙에 익숙하면 어떤 물건이나 장소, 사건이나 행위 자체로도 성스러움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을 갖겠지만, 베드로의 꿈에서 나오는 음식이나, 이방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에 대한 바울사도의 이야기가 그런 것에서 자유로와야 함을 이야기 하는 거야.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던 거였지. 로마서는 분명하게 우리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이야기 해.
고대부터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이방 풍습에 대한 기록들이 물건이나 장소와 같은 특별한 것에 의미를 두고 더 근사하게 기록되어있기도 해. 이스라엘도 영향을 받았겠지만 성경의 저자들은 오히려 이방인들이 가진 마법이나 주술과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제해버린 것 같아. 특별하게 보이는 것과 특별한 것은 다르니까. 신약도 그렇고 구약도 그래. 궁극적으로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성경이 답하고 있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는 것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성경은 이야기하지.
사복음서의 기자들이 다른 순서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기록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동일한 기록으로 누구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저자가 만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기록했기 때문이야. 전기나 신화를 기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누가가 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많이 기록했는데 자신도 기록해서 남겨두려고, 그가 알고 경험한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려는 의도였던 거야. 예수그리스도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그의 이야기들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 회복에 대한 복음의 이야기야. 무엇이 성스럽고 거룩한가를 판단해 주시는 것은 아니었어.
다른 역사 기록들과는 달리 신약 성경의 기록은 실제 부활 사건 후에 몇년이 지나면서부터 기록되기 시작했어.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태도도 눈여겨 보면, 사도들을 포함해서 바울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거야. 그래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님을 자기 소개를 통해서, 편지 쓴 목적을 통해서 저자들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거야.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기적과 같은 경험이나 자신의 특별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저자들의 마음이 그런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로 이야기해도 우리에게 믿음은 마법처럼, 신비한 반지처럼 나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존재하게 되는 거야.
거룩함은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거야. 사람으로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는 그 일을, 십자가에서 원래 사람의 자리로 옮기셔서는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지. 그 복음이 내 안에서 쌓여서 위로와 회복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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