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는 항상 그 초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믿을 수도 있고, 어떤 나라의 법을 믿을 수도 있고,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할 수도 있지만, 나의 믿음이 그 대상을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확실하게 믿는다고 해서 그 대상이 확실해 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브라함의 의가 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많은 어려움을 지나가는 동안에 돌이켜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또 도우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런 반복되는 사건들을 통해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경륜을 자랑하기도 하고, 마치 그것이 어떤 신빙성을 갖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성경의 초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확신이나 신념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하고는 다른 일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믿음이 나을 수가 있는 것이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확실하게 믿기를 노력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떤 수준이 생겼다고 믿으면,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훈장이 됩니다. 어쩌면 믿음에 대해 익숙해 있는 우리의 많은 표현들이 어렵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한 믿음, 약한 믿음, 건전한 믿음 그런 표현들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랄 수록 우리의 믿음은 좀 더 나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이 되심으로 우리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한 바울사도의 마음이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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