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REALITY

사람 그리고 하나님

by jeffreyM 2023. 9. 22. 08:20

본문

아마 하나님을 신앙하는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함을 요구하시지만 우리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 온전할 수 없다는 절망같은 것입니다. 이웃을 통해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평생동안 이 경주를 해야함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 좋은 사람이 되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라고 말할 아무런 이유가 내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달라지는 것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감사하다는 느낌,  이전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구해야한다는 느낌, 사람의 상태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들 뿐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야기하지 전에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와 같이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가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가는 일 보다, 우리가 가진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즐겨합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소망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가 배경에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소망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의 이야기들이 끝나가는 모리아 산에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호와의 사자의 표현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그때까지 아브라함의 인생가운데에 아브라함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욥이 아직 끝나지 않은 그 고통과 신음속에서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고백 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르도 욥이 이전에 행하였던 많은 행위들, 그의 삶이 의미없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욥은 그 마지막 고백 때문에 욥이 된거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내어 놓았을 때에 아브라함이 어떤 수준에 이르게 된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을 우르에서 나오게 하신 때에도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녀를 낳을 때에도, 그가 옮겨 다니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그와 함께 믿음의 민족을 만드시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우유부단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아브라함의 인생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이유가 되십니다. 

지금 우리시대에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내용들이 작고 상대화 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은 피상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해서 묻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와 우리의 관계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믿음의 내용이 되시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두고, 우리 안에 채워져 가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대화와 우리의 질문들이 하나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에, 우리 서로의 관계가 하나님과 그 구원이 어떠하심을 전제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태어나 자라지 않는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도, 바울사도의 자유함도 우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 그리고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욥 또 다른 복의 이야기  (0) 2023.11.15
믿음이야기  (0) 2023.09.26
아름다운 날들  (0) 2023.08.20
온전함  (0) 2023.04.27
맡긴다는 것  (0) 2023.04.1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