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시대에 믿음으로 당하는 어려움과 지금 시대에 우리가 고민하는 신앙의 내용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시대보다 크신 분이고 세대보다, 문화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지나가는 것이 초대교회에 기록되는 것은, 그러한 고난이 하나님을 향하고 알아가는 일에 어려움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이겨내는 것 자체가 믿음일 수도 없고, 믿음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고난이 있다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 중에 인생을 마무리하도록 두시기도 했고, 고난이란 믿음의 세월이나 사람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시는가 하는 것도 우리가 묻는 것이지만, 어려운 시간들을 포함해서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인생의 순간들 가운데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대가를 치르심으로 사람의 그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자랑이었고, 스스로도 괜찮은 삶을 살다가 영문 없이 당하던 어려움을 지나갈 때에 욥이 고민하는 내용과, 결국 그 어려움들 중에 하나님이 자신의 이해보다 크심을 알게 되는 일이 욥기서의 내용입니다. 내용상 그가 말련에 가지게 된 부요함은 그가 당한 고난과 그다지 관련이 없습니다.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부를 이전보다 갑절이 되도록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한 내용 가운데 다양한 위로와 권고의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지만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용이해지거나 부요해지지 않는 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사람이 편안하고 부족함이 없을 때에 삶이 대개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면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시대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는 일에 무엇이 장애가 되는지를 묻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겠지만, 이스라엘이 세월을 통해서 그들의 조상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무감각해졌을 때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면, 지금 믿는 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풍요함을 갖게 되는 일이 가장 큰 도전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의 일부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다양한 사람의 선택들 중에 하나가 될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삶과 인생과 세상 전반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은 어려움이든지, 고난이든지, 부요함이든지 평안한 삶을 살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향하는 일이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당하고 감각하는 고난은 여전히 크게 보입니다. 하지만 크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사람이 가진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기억하라고 그래서 게으르지 말라고 바울은 편지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항상 생명을 걸어야했던 사도의 편지입니다.
6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