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하라는 지침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일에 대해서 입니다. 의미 있다고 믿는 일들에 충실했던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야단치신 것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가진 빗나간 삶의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일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던 것은 처음 사람이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와 세계 안에서 누리는 삶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과 의도있는 행위들에 대해서도 모두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은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시작되고 이루어져 가는 구원은 두려운 것입니다. 누리고 즐기게 되더라도 그것이 온전한 것이 되도록 항상 주의하고 돌아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하다가 형제와 다툰 일이 생각나서 가서 화해하는 그 이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겠습니까?
왜곡되어있는 삶의 근본에 대해서 지금 성경의 이야기를 아는 우리의 관점은 제자가 되는 일의 의미를 짐작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에게 제자가 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훌륭한 선생의 의미 이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메시야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 메시야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가 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것도, 이스라엘은 그것의 심각성을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가족과 자기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중요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 상대적인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신앙의 세월을 지나면서 갖게 되는 질문 중에 하나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서,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가족의 문제나 소유의 문제는 살아가면서 익숙해지는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때에 사람이 익숙한 소중한 그것들이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시대 우리 환경에서는 가족을 버려야할 만한 신앙의 문제도 없고, 소유를 다 버려야 할 만한 신앙의 문제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말씀의 초점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것을 신앙의 문제로 이해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신앙이 왜곡되고 변질될 때에 그런 것들이 요구되거나 자랑이 될 뿐입니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하는 이웃에 가족이 빠질 리는 없습니다. 소유를 다 버리는 것도, 왜 버리는가의 문제이지, 소유를 다 버리는 것 자체가 가치가 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일, 그의 제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거대한 일인가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왜 우리의 묵상은 우리 인생안에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알아가는 일보다, 우리의 생각속에 커 보이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짐작할 수 있지만,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사람에게 약속된 것은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것입니다. 동일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제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전에 습관처럼 해 오던 일을 그만 두게 될 수도 있겠고, 이전에 게으르게 하던 일들을 더 열심히 하게 될 수도 있지만, 생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 호흡하고 하나님 만드신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배우고, 하나님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누리고 가꾸고 배우는 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데 그냥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만들면서 지나가게 되었을 인생이 이제는 살아가는 일상들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음음 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풍부함과 궁핍함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사도의 고백처럼 사람의 인생의 배경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보면 우리는 그의 고백에 한 번 더 놀랍니다.
사람이 복음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되는 일은 사람이 평생 가지는 관계나 소유와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시작되기 전에 대개는 가족과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예수님의 요구에 분노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세상이 익숙한 가치들이 선택의 문제가 되는 비교할 만한 것들에 대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과 가진 소유를 잘 사용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가진 자가 아니라 맡은 자 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야로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선포에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무감각한 이스라엘에 게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시대에도 항상 사람과 함께 계시며 일하시는 하나님, 사람의 유일한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는 한, 관계와 소유에 대한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보다 더 큰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변, 이웃을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교회의 지체들을 통해서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한 신앙의 도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귀를 열어서 그것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람의 구원이 되시며 그것이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구원되심을 살아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r2luke1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