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에 있는 갈등들은 한 사람이 믿고 확신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는 데에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는가, 그리고 이 순간에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지금 나의 최선이 친구의 최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들이 우리 안에 있는 갈등들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다른 이들의 신앙에 대한 평가나 비판은 그것이 지금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믿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믿음의 이야기는 여전히 하나님과 나의 이야기 입니다.
크신 하나님 안에서 내가 가진 신앙의 내용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 나이에 따라서도 신앙은 다양한 내용을 갖기도 합니다. 다양한 매체가 전하는 정보들이 다른 문화안에서 표현되는 신앙의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다름을 알게 합니다. 언어들마다 가진 특징들로 인해서, 다른 언어로 신앙의 동일한 나눔들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언어와 번역된 언어 사이의 차이로 인해서 갖게 되는 오해를 통해서도 확인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 사람이 어떻게 자라왔는가에 따라서 신앙은 아주 다른 모양을 갖습니다.
오랜 세대를 통해서 애굽에서 노예로 태어나서 자란 이스라엘이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을 향해 떠났을 때에, 그들의 생각과 정서 안에 있던 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가졌던 믿음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가나안을 향해 가는 길에서 불편함과 불만과 불평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불평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속의 땅을 지척에 두고도 광야로 향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두번 세대가 바뀌고 애굽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가나안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하신 약속을 들은 이스라엘이 거의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나 내용보다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신 것은 이루어집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가나안이 그렇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시는 일이 그렇고, 사람과의 막힌 담을 허무시는 구원의 약속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습니다. 작은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은 거대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어느 순간에도 내가 가진 신앙의 내용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내용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사람을 향할 때 우리는 비교하고 평가히고 판단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에 복음을 이야기하신 것은 모두 나 자신의 속사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한 것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부차적인 이야기입니다. 부차적인 것들에 초점이 있어서 실제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린 당시 지도자들에 대해 예수님이 단호한 표현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세번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에 초점이 머무르는 법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회심 전의 바울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설령 괜찮아 보여도 성경은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하시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이 청지기 이야기는 어떤 교훈은 물론이고 상식으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비유입니다. 청지기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나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필요한 일, 남은 인생동안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줄여 줍니다.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을 친구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가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지 않아서 그 소문이 사실이었는지 알 방법도 없고, 그 사람에 대해서 혹은 그 과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가 위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믿음이 생존의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우리 믿음의 모양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 청지기의 심각한 반응처럼 우리의 인생은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정서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가끔 우리의 신앙이 포기나 체념이나 나태함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욕심같기도 하고 치열하게 의논하는 것이 나의 고집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고민의 끝에 하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위기 때에 반응하는 그 심각함 보다,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이시므로 주신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그 동기가 더 심각하고 진지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항상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이 우리의 삶 자체라는 것, 그래서 그 살아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방법을 구하고 움직이고 있는 그 청지기와 같이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하고 귀하게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r2luke1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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