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믿음 이야기

큐티

by jeffreyM 2022. 2. 16. 00:06

본문

사람에게 자신이 평생을 통해서 쌓아온 신념이 도전을 받을 때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인식하는 일은 중요한데도 그러한 인식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껏 빗나갔던 많은 세월을 돌이켜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그 의미있는 추구보다, 그동안 살아왔던 많은 세월이 그다지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 탓인 것 같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 끊임없이  확신이 더해지면서 두려움이나 의심이 점점 사라지는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의외로 살아가는 중에 더 확신되는 인생의 내용들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커다란 몇가지 인생의 전제들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점검해 보게 되는 것이 우리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살아 갈수록 가졌다는 느낌보다 무지함이나 오만함에 대한 인식이 더 커가게 되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에 있어서는 이것이 더 분명해 집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내용들의 배경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은 쌓여가는 지식들이나 확실해져가는 사실들을 더 좋아합니다.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더 가지게 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긍정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적인 확신을 갖고 싶어하는 경우에 사람은 오히려 실수를 하거나 많은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자주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 이천년이 지나면서 사람 가운데에 필요한 확신들이 쌓여 간다고 하면 지금 쯤 우리는 가장 확실한 신앙의 내용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이전 세대 보다는 나은 수준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사람은 다른 모양으로 그 악함과 약함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이 기대하는 수준의 나아짐이나 쌓여기는 지식의 내용으로 더 나은 확신을 갖고 싶어하는 일은 신앙이 추구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과, 그러한 사람의 바램은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사람의 욕망 욕심에 대한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때 부터, 그리고 사람과 함께 하신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의 수준이 얼마나 나아지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아니라, 항상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문제마저도 수준과 높음 낮음이 있다고 믿지만,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항상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 안에서 쌓여가는 내용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고 엉뚱한 결정들을 하지만,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가의 문제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이 창조주 이신 하나님께 돌아서는 일은 가장 당연한 일이어야 하겠지만 여전히 사람은 믿음의 문제 마저도 평가가 가능하고 수준을 경계지을 수 있는 문제로 이해하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서 쌓아가는 지식들처럼, 열심히 준비하고 훈련해서 남보다 나은 자리를 갖고 싶어하는 어떤 것 이상이 될 수가 없는 아주 초라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어려서 부터 혹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수많은 질문과 시행착오를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결론이나 사람이 갖는 자질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소원함이나 큰 소리로 외치는 일로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이 대치되지 않습니다. 달란트나 지식의 쌓임으로 신앙의 수준을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말씀들은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더 나음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것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이 확신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내용들을 안고 허락하신 인생을 마무리 합니다. 그리고 또 다음 세대가  오고, 또 그 다음 세대가 와서 또 그 인생을 반복합니다. 
사람이 가진 신념은 그것이 고정된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은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과 결정과 고민과 행동의 모든 것에 일하시고 계심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이 지키고 추구하는 수 많은 가치들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고집스러운 사람의 생각이거나 욕심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업적이나 성취나 만족감 같은 것을 통해서 이해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깊은 절망을 하게 될 때에 그 영원이라는 것을 바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믿음이란 여전히 어떤 보여지는 결과를 향한 행위로서 이해됩니다.
믿음을 사람이 정의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게 되면 그 신앙이 주는 영향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교사인 경우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들을 포함하므로 훨씬 더 심한 책망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가 나아졌다라는 말보다는, 그가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아니어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은 자손들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리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입니다. 이제 편안하게 말련을 보내야할 것 같은 다윗이 어려움과 슬픔중에 눈물로서 쓴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하나님을 읽습니다. 죽음의 자리도 따르겠다고 다짐하던 그 제자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통곡하는 자리를 지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반복해서 사랑하는 줄 아시지 않느냐고 고백하게 된 자리도 사람에게 쌓여가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하시는 그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강해져가는 확신의 문제도 아니고, 남도다 많은 지식의 문제도 아니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능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포함해서 약한 곳에서 작은 자에게 찾아오시며 하나님의 구원되심을 알려주시는 그 인생의 모든 이야기들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써가시는 믿음의 이야기 입니다.  r2luke11d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자가 되는 일  (0) 2022.02.24
역설과 같이  (0) 2022.02.17
그 비교  (0) 2022.02.13
누가 내 이웃입니까  (0) 2022.02.11
그 사마리아 사람  (0) 2022.02.1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