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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되심을 걸었던 사람

큐티

by jeffreyM 2023. 12. 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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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욥의 시험당함을 허락하시는 것은 욥의 어떠함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욥이 세 친구들의 충고처럼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그의 아내의 표현처럼 하나님을 저주한다면,하나님이 틀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끝까지 자신이 왜 그러한 어려움들을 당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에서 주변 사람들의  고소에 대해서 자신의 어떠함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욥은 그가 가진 복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어려움은 많은 것들로 왜곡되어 있고 그러한 왜곡을 알 수 없기까지 되어버린 우리 신앙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가진 갈등이나 어려움에 대해서 진지할 수 있을까? 사람의 갈등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걸까? 사람이 모든 것을 잃고 참으로 낮은 자리에 처하게 될 때에는 어떤 모습으로 반응하게 될까?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관련이 있는걸까? 사람이 어려움을 지나가게 될 때에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겠는가? 
아담과 이브에게, 가인에게, 아브라함에게, 다윗에게 찾아온 유혹을 그들은 이기지 못하였지만, 욥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의 마지막 회개는 하나님의 크심과 자신의 작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 열려 있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사람은 사람 존재의 작음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떠함에 대해 자각하면서 부터 신앙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은 어떤 한사람으로 시작되는 것도, 어떤 환경을 탓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사람됨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고, 나도 거기에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 대한 그리고 부요함에 대한 다른 관점들이 생겨납니다. 
욥은 끝까지 자신이 왜 그러한 어려움들을 당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세 친구들의 고소는 그들의 관점에서 정당한 것들이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알게 하십니다. 욥이 마지막 곱절의 복을 받았다는 기록 전에 그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의 의로움은 자신의 삶에 주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욥기의 시작에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서 제사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자신을 충고하고 간접적으로 정죄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도 있습니다.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의 내용이나 관점을 제한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앙의 관점과 우리가 삶중에 선택하는 내용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일까? 욥이 부요할 때도,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의 몸이 상하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대면하면서도 그에게 항상 있는 태도가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과 또 자신이 당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내용 보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라는 전제가 그에게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Jb. 42:5)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구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월이 쌓여갈수록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는 것이고, 그가 열려 있는 만큼 더 하나님을 알게 되는 풍성함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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