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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큐티

by jeffreyM 2023. 3. 2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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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그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것일 수 있습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진리들을 대하게 될 때에 그 가르치는 사람은 그 진리를 배우는 자에게 얼마나 큰 비중을 갖습니까? 스승은 어떤 의미를 갖겠습니까? 
사람이 어떠한 지식이나 지혜를 배우게 될 때에 그 초점은 진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에게 머무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나은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정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사람 스스로 자주 많은 좋은 말들 뒤에 숨어 있기도 합니다. 사람이 어떠함과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슬픈 사람 존재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여지는가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게 되는 것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슬픈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나, 천국에서 큰 자에 대한 비유들을 기억하면 그 초점이 항상 동일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사람의 구원, 사람됨의 회복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서의 기록중에,  선한 선생이여라는 표현에 대해서 예수님이 선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답을 하신 것은 그렇게 부른 사람의 의도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항상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에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틀려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 것이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말씀과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구제하는 사람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시대에 사람이 거기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보여지는가 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사람의 초점이 머무를 수 있을까? 
당시에 서기관이나 바리새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표현은 가혹할 만큼 부정적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의 언어와 그이들의 실제로 어떠함이 같지 않음을 예수님은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식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그들의 사람됨에 대해서 자주 듣고 알게 됩니다. .
이제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 대한 것도 아니고, 괜찮은 일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높이려 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처음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예수님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려는 사탄의 유혹에 대해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내게 지나가는 수많은 유혹들, 보여지는 것들과 느껴지는 것들과 자랑할만한 것들로 부터 사람은 자유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씀 속에서 깨닫는 많은 내용들로 충분하다고 믿기도 하고, 신앙에 대한 나의 표현들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주의해서 나를 들여다 본다면 그 흔적들은 오히려 분명한 것들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바리새 사람이나 서기관들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나무라시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충분하지 않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음에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 보다 나의 보여지는 것에 내가 머물러 있을 때, 다른 지체들에게 일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보다, 내가 가진 신앙의 지식으로 평가나 비판들을 할 수 있는 언어가 있음에 만족하게 될 때에, 비록 사람에게 존경을 받거나 인정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외식하는 이들과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이 있는 자리에 대한 절대적인 자각으로 인한 것이어서 겸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사람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하시는 일, 나의 나됨을 회복하시는 일에 대한 것이므로, 사람은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어려움이나, 나를 주저 앉게 하는 사람과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아니하고, 믿음의 사람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는중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사람을 사랑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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