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KEN LINK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오랫동안 삶을 나누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싶을 때들이 있다. 그 이들에게 또 내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나 좋지 않은 일들, 실상 어떤 원칙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적어도 사람에게는 그렇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거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원칙이 존재한다고 해서 내게 또 내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에 절대적인 원칙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불안함와 염려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최선이란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어야 함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 어떤 원칙들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삶이란 오히려 마냥 건조한 것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래서 내 기대수준을 낮추거나 아니면 힘들지 않게 기대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크리스찬들에게 이 일은 실제로 평생의 질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기대에 좋은 것은 실제로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도 하고, 또 인생에 어떤 기대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하고, 또 영원이라는 시간에 비추어서 사소해 보이는 우리 인생에 열심을 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도 하게 되지만, 결국 사람이 가진 좋은 기억과 행복했던 순간들과 지금 나를 나 되도록 하는 많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배우는 것들이다. 항상 오래된 것들이 흐르지 않으면 부패한다. 어떤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어떤 사람은 수명을 다하고 이 인생을 대하고 또 마무리 한다. 영원을 생각하면, 누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은 질문이 아니다. 장수하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다. 하지만 일세기 사도들을 포함해서 복음의 진전을 위해다가 목숨을 잃은 이들의 삶은 안타깝지만 괜찮은 일이다. 물질적인 풍요함은 성경에 복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부요하지 않다고 해서 복이 아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해서 저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실질적으로 가난함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과부와 가난한 자에 대해 내버려 두지 말라는 성경의 권고가 그런 배경일거다. 그럼에도 삶에 대해, 삶의 배경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가진 생각이나 태도는 항상 하나님이 계신다는 전제가 있다.
우리시대에 크리스찬들은 여전히 일어난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하나님은 항상 계시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행하는 어떤 일에 대해 반응하는 분으로 계시는 거다. 여전히 원칙과 방법들에 영향을 받는 거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지만, 어떤 선택이나 행위는 그 관계가 어떠함에 근거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관계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혹은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크리스찬이 기대하는 것들이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오래전 이방의 땅 우르에서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그의 삶과 생명을 지키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셨다. 그 하나님을 기대하는 거다. 그러한 기대가 우리의 인생이 짧든지 길든지, 힘들거나 대개 평탄하게 여겨지더라도 영원이라는 시간가운데에 주신 인생 가운데에 나를 지키시고 나의 배경에 항상 계신다는 약속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어떤 때는 일어나는 일들에 걷잡을 수 없이 눌리게 될 때도 있지만 항상 거기계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고, 최선을 다하는 그 시간들 중에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