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그리고 하나님

공유와 공감

jeffreyM 2024. 10. 21. 23:59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어. 공감하고 싶어 하는 거지. 사람이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사람의 공감에 대한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때에도, 신뢰가 깨어지지 않는 한 사람은 다른 표현으로 또 그 공감의 시도를 하게 되어 있어. 
크리스찬이 스스로 가진 성경에 대한 혹은 믿음에 대한 이해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도, 그것이 의미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나눔이 믿음의 여정에서 갖는 중요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지만, 믿음 안에서 나누는 것들은 항상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전제가 되어 있어. 그래서 누군가 끊임없이 확신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거슬리는 거야. 사람의 확신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은 아니거든. 게다가 이 세계 안에서 내가 속해있는 나라와 문화, 언어와 세대, 공동체가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를 이해한다면 오히려 더 큰 경외를 갖게 되는 거지. 더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확신한다는 사실이 그 확신하는 내용보다 더 중요해질 때에 우리가 갖게 되는 오류들이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해, 사람이 갖게 되는 믿음은 긍정적인 것이겠지만, 그것은 지식이 자라면서 갖게 되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이지, 사람이 소유하는 지식이나 수준하고는 거리가 멀어.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서, 사람의 어떠함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믿으면 이 시대와 이 문화와 나 개인이 처한 이 특별한 가치관의 배경에서 하나님은 아주 작은 분이 되시는 거지.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그분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거야.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라서, 어린 아이와 노인, 남자와 여자, 열방의 다양한 가치들 가운데서 여전히 하나님이 되시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