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길을 잃었는데도 괜찮다고 생각했나봐

jeffreyM 2024. 1. 16. 23:52

무슨 일이거나 아무리 진지한 결심을 해도, 진지한 약속을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충분한 법은 없는 것 같아. 아무리 그 마음이 진심이더라도 그 결심을 지켜낼 수 없는 게 사람 존재거든.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믿음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소외되는 게 나 자신이라는 거 알아? 믿음을 이야기하는데 내 이야기는 거기에 없어도 될 때가 많거든. 사람의 구원은 먼저 나 자신과 하나님의 회복된 관계에 대한 것인데 말이야. 그래서 믿음의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가진 작은 지식으로 혹은 가벼운 이야기로 충분하거나 아니면, 다른 이야기로 내 이야기가 대치되는 거야. 
어떤 때는 기도라는 시간으로 오히려 고민들을 묻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을 위로하는 시간으로 기도를 삼기도 하는 것 같아. 그러면 우리 믿음과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길을 잃는 거지. 길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텅빈 기도의 말들을 멈추지 않았던 때가 있어. 그것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지. 사람의 결심이나 약속이 그 순간에 진심이었겠지만, 그 가열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렇게 신뢰롭지 않은 거였지. 길을 잃어도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거지. 
다른 관계들이 그런 것처럼 믿음이란 항상 구하고 고민하는 가꾸어야 되는 거구, 어떤 결론을 향해서 갈 수가 없는 거쟎아. 하나님은 항상 크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 되시는 거구.

하나님이 그 빗나가 있는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을 경험하셔야 할 만큼 사람 존재가 빗나가 있었지. 적어도 우리 믿음 안에서 관계를 대치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 이제 우리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거야. 나를 들여다 보는 일, 주신 삶을 돌아보는 일, 나를 열어서 나를 나누는 일, 어떤 각오나 보기 좋은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말하고 지키는 일에 익숙해야 하는 거지.
내용이 없어도 하는 일이나, 지키는 자리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 내가 없는 이야기지. 나는 거기에 없지만 보여지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면 십자가 말고 편리한 다른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