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초라한 것들
성경에서 중요한 이해중에 하나는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사람에게 보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계심은 약속을 통해서 주어지고 성전/성막을 통해서 대표적으로 표현됩니다. 가장 중요한 이해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 가운데에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의 의미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시대의 교회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구약에서의 모임은 세가지의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사장들이 매일 대중을 대신해서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대중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습니다. 두번째는 왕이 참여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대중들도 거기에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 사람들이 따로 모이지는 않습니다. 세번째는 가끔 큰 규모로 여행자들의 축제가 성소 주변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성전도 성막도 지금의 교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성전의 바깥 뜰은 희생제사를 준비하고 필요한 정결의식을 위한 것이지 지금의 교회처럼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모이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의 교회가 구약의 성전이나 성막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로 제한될 수도 없고, 제사장과 같이 대중들을 위해서 제사하는 어떤 역할이 따로 존재할 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시대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한번에 드린 희생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 그리고 사람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는 희생 제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배경에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관으로서 혹은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어디까지나 사람 스스로의 유익함을 위해서 또 편이를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아무런 흔적이 사람에게 없던 사무엘 시대에, 하나님의 법궤는 이방 블레셋에게 허무하게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도 신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그리고 다시 건축되었던 성전도 로마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에 성전자체는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돌로 만들어진 건물 이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람은 외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일하심과 구원하심을 대신하려 합니다. 거기에 거룩하다고 믿는 행위가 있고 율법의 제한이 있고, 성전과 같은 건물이나 장소가 있고, 하나님의 법궤와 같은 특별한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들을 만들고, 그러한 원칙들을 지키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그 거룩함의 대가를 치르셨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구원을 장소나, 행위나, 물건이나, 어떤 사건과 같은 작고 초라한 것으로 대신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