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일
성경에서 언급되는 어떤 원칙 같은 것들은 그것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도 원칙을 따르는 행위 자체로 의미있다고 믿으면,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난 중에 분투하는 많은 성도들보다 전통 가운데서 좋은 원칙들을 만들고 잘 지키고 있었던 당시의 지도자들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다툰 형제를 두고 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귀한 일들이 본질적인 문제를 버려두고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행위들은 거기에 전제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 습관을 좇아 하는 행위들도 처음에는 동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질문은 처음의 동기들을 잃어버리더라도 주어지는 형식으로 충분한가? 마음이 없는 대화는 어떤가? 책임과 의무만 남아 있는 우리의 삶의 관계들은 또 어떤가? 우리는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안에 있는 수많은 부조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면서 더 세세하게 감각하게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습관이나 우리가 익숙한 언어들과 원칙들이 어느 순간 무감각하게 우리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에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대하는 음식도 누군가를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는 것도 비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형제를 거리끼지 않게 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바울은 씁니다.
사람의 지식과 경험, 개인의 확신이나 자유로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살피고 주의하는 일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는 배경에 있었을 사건들을 조언하는 내용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도 동일하게 빠지기 쉬운 오류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확신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일은 없고, 사람의 자유함으로도 충분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믿음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