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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여자 이야기

jeffreyM 2023. 4. 14. 04:00

민수기는 모세가 이방 여자를 취하는 것과 그것을 비방하는 형제들, 미리암과 아론이 어떻게 그 대가를 치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인 것이 부러웠던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야단치시는 중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 때문이라고 모세 특별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태어나자 마자 시대상황에 따라 죽을뻔 했던 아이가 우연히 이집트 공주의 눈에 띄어 왕자로 자라고, 광야로 도망해서 살던 시기를 지나 사람의 기준으로 안정되었을 무렵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인으로 출신의 정통성이나 지켜온 삶의 방식이 중요한 기준이었으면 모세는 자격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원하지 않던 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모세를 따르고 있었을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지만 아론과 미리암 뿐 아니라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세를 어떤 마음으로 따르고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하던 이스라엘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곁에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다름이나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짐작을 해보지만,  우리 사람은 인생 자체를 누리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행복하기나 의미있기 위한 어떤 외적인 조건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러한 조건들을 구하는데 바빠서 누림이나 사랑이나 행복같은 것들도 아주 작고 제한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이야기하신게 아니지 않는가? 모세나 미리암처럼 결국 그 고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스여자가 실제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미리암이 고소하는 그것에 대한 답이 아니라, 모세가 온유함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모세를 대면하여 대화하심과, 모세의 충성함에 대해서 칭찬하시고, 모세를 비방하는 미리암을 벌하십니다.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구하는 모세를 통해서도 모세의 다름은 확인 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직접 대면해서 은밀하게 하지 않고 명백하게 이야기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직접 대면하는 하나님, 우리가 가진 구원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무감각이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리고 사람됨에 대한 회복을 시작하지만, 우리 시대 안에서 사람이 추구하는 것들에 비하면 신앙안에서의 그러한 “회복”이라는 것에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초점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에서 돌아서게 될 때에, 우리는 믿음의 일마저도 사람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질투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식을 쌓아가고, 경험을 쌓아가고, 지위를 얻어가는 중에 그것이 믿음 안에서도 어떤 조건적인 우위를 허락한다고 생각하는 한은 우리도 미리암이나 아론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영원이라는 시간안에 허락하신 사람의 인생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이라는 시간 안에서 삶을 대하지 않으면, 인생 안에서 지키고 열심을 내어야 할 이유가 그다지 없습니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회적인 책임이나 의무나 도리같은 가치들로 사람을 동기부여하는 일도 설득력이 그다지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이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한은 포기 에 더 가깝습니다.  미디어가 발달한 우리시대에는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의 예들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의 공권력이 사라졌을 때에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거기에 또 공정함의 문제가 더해지면 사람은 자신이 지켜왔던 그 가치들을 쉽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시편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거나 억울함을 당하거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믿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인생을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황 안에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다윗은 얄미웠을 것 같고, 형들에게도 그다지 사랑 받는 동생은 아니었던 것 같고, 사울을 피해서 도망다니던 세월이 길었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첫 아내 미갈에게 무시당하고, 밧세바를 자신을 따르는 부하를 죽이고 얻습니다. 첫아들이 죽고 상황이 나아지는 듯 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성전 짓는 일도 하나님은 못하게 하셨고, 사랑하는 왕자, 아들로 부터 치욕적인 배신을 당하고 말련에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하나님을 향한 그의 고백이 항상 따라다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구하는 다양한 필요들과 소원함들 혹은 욕심과 욕망에 대해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것들이 상대화 될 수 있는가? 언제든 그것이 갈등이 될 때에 멀리 가지않고 돌이킬 수 있겠는가? 

미리암과 아론이 그렇게 모세를 고소하고 도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있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사람이 허용하는 많은 생각들, 욕심과 실수와 후회와 돌아섬의 그 자리에서 항상 영원이신 하나님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므로 나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의 험난한 인생에 비추어 다윗의 고백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많은 사건들 중에서 그는 항상 하나님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의 슬픔이 짧은 이유이고 그의 눈물이 많은 이유일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영원을 구합니다. 그래서 삶의 고귀함을 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옮음과 나음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도 그 영원안에 있습니다.